본문 잠언 6:1-19
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잠언의 첫머리(1:1-1:7)에서 잠언의 집필 목적과 주제를 언급하고 나서, 1-5장까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하는 형식으로 지혜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였다면 6장은 실제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교훈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뤄지는 내용은 10-31장에서 많이 언급하게 될 내용을 미리 설명하는 형식이면서 또한 관련 설명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6장 1-19절에서는 세 가지 주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보증에 관한 교훈, 두 번째는 게으름에 대한 교훈, 세 번째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삶의 방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증에 관한 교훈(1-5절)
“(1-5)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1-5절은 첫번째 주제인, 담보와 보증에 대한 교훈입니다. 이 교훈에서 남을 위하여 담보를 서거나, 보증을 섰을 경우 이에 대한 조언은 어떻게든 속히 그 보증의 의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5절에 마치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듯이, 새가 그물친 자의 손에서 벗어나듯이” 속히 보증의 올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보증을 잘못 서게 되었을 때에 내가 대신 갚아야 할 위험 부담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보증을 서지 말라고 하는 대상은 변제해 줄 돈이나 재산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까? 내가 그 돈을 변제해줄 능력이 충분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다른 사람을 담보해주거나 보증해 줄 만한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보증을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사람의 채무를 보증해주는 것은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책임지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장 자신의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인생, 다른 사람의 재산을 보증해 줄 수 있습니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구를 보증해주거나, 무엇을 담보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보증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너머의 일입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을 보증할 수도 없고 그렇기에 더더욱 남을 보증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도 다른 인생을 보증해줄 수 없는 것입니까? 그럿습니다. 죄인된 모든 인간은 아무도 다른 사람을 보증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을 책임지고 보증해 줄 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죄없으신 예수님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전부 다 내어주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예수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 인생을 보증해주십니다. 그리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오늘도 연약하고 부족하고 깨어지기 쉬운 우리 인생의 보증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이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예수님 말고는 아무도 우리 인생을 보증해 줄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도 책임질 수 없는 인간은 다른 사람이나 재산, 재물의 보증인이 되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보증을 서는 것은 자신의 실존을 망각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게으름에 관한 교훈(6-11절)
6-11절은 게으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6-11)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게으름은 일하기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을 말합니다.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하염없이 자꾸 뒤로 미루거나, 회피하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다른 동물과는 비교되지 않는 탁월한 지성과 영성을 지난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부합되지 않은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창조질서 아래 살아가는 하찮은 개미를 통해서도 전해집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게 살아가는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동물에게서라도 배워야 합니다. 개미에게서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6-8)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개미는 여름 동안 부지런히 일하여 겨울을 준비합니다. 풍부한 양식을 모아 겨울을 대비합니다. 개미에게 있어 여름과 가을은 열심히 일하여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감독자, 통치자도 없이 부지런히 일해 겨울을 준비하는 것은 개미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질서에 따른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야 할 때, 열심히 추수해야 할 때 수고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일하는 것, 노동은 죄를 지은 아담에게 주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이 일하는 그 땅이 아담의 죄악의 결과로 저주를 받아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땅으로 바뀐 것입니다.(창3:18) 아담이 농사를 짓는 땅이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열매는 박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무성하니 그 얼마나 고되고 힘든 삶이겠습니까? 죄악의 결과로 인간이 일하게 된 것이 아니라, 죄악의 결과로 땅이 저주를 받았기에 열심히 일해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박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일하게 된 것이 죄의 결과가 아닙니다. 살후3:10에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박한 결과를 얻게 된 것이 죄의 결과일 뿐입니다.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따라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십시다(롬12:11). 이렇게 일하는 자는 박한 열매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타락전 에덴에서 누렸던 것과 같이 예수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누리게 하십니다(요10:10).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7가지 (12-19절)
"(12-15)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
12-15절은 실제로 불량하고 악한 자의 삶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더이상 희망이 없는 이 불량하고 악한 자의 삶의 방식이 바로 이어지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7가지를 실증해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16-19절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7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6-19)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16절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를 문자 그대로 번역해보면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여섯 가지가 있고, 여호와께서 혐오하시는 것 일곱가지가 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여섯가지에 , 여호와께서 혐오하시는 것으로 7가지 (앞의 여섯 가지에 하나 더 추가된 7개) 곧 에닐곱가지입니다.총 7가지를 정리해보면, 1) 교만한 눈, 2) 거짓된 혀, 3)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4)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5) 악으로 달려가는 발, 6)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7) 형제사이를 이간하는 자 입니다. 대부분 우리 육체로 행하는 죄입니다. 눈, 혀, 손, 마음, 발, 입으로 하는 죄악입니다. 우리의 죄악은 대부분 우리의 육체를 통해 범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체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사용하기만 해도 우리의 죄악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롬12:1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한”이라는 의미는 구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구별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몸을 하나님을 위해 구별하여 사용하기만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매 순간, 우리의 육체가 죄악 된 옛 습관을 향해 움직이려 할 때마다, 우리의 육체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존재임을 스스로 상기시키면 우리는 쉽게 죄악의 유혹에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갈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나의 옛 자아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십시다. 우리의 죄악으로 향하려는 몸을, 때마다 시마다 십자가에 못박고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도구로 사용하시도록 주께 내어드리는 겁니다. 교만해지려는 눈, 거짓으로 내 사익을 추구하려는 혀, 악한 일에 앞장서려는 발, 거짓을 말하고 사람들을 이간 시키려는 혀와 입을 순간순간 십자가에 못 받는 겁니다. 그 때 마다 죄로 향하는 나의 옛 자아는 죽고 주님이 내 안에 사셔서 역사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로 향하는 내 몸, 내 육체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가 내 안에 역사하시도록 하십시다. 오늘 하루 나는 죽고 예수가 내 안에 사실 때,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지혜자로 오늘 하루를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아닌 것을 의지하고 살았던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오직 우리에게는 보증할 만한 것도 없음을, 보증 설 만한 인생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는, 예수님만 나의 보증인으로 의뢰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악으로 달려가기 쉬운 육체를 오늘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우리의 옛 자아는 죽고 오직 예수만 내안에 역사하시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바라시는 참 지혜자의 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내가 누군가에게 보증을 선 일이 있다면 이 본문을 통해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2. 나의 삶의 태도중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며 살아가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일에 대한 나의 관점은 성경적입니까?
3. 쉽게 유혹에 빠지게 되는 나의 죄는 무엇입니까? 나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받는 다는 것은 매일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구절을 암송하고 유혹과 위기의 순간마다 이 구절을 내 자신에게 상기시키십시다.

(작성: 김신년)